지은이(옮긴이) | 로이 루이스 지음 (김석희) |
카테고리 | 소설 |
펴낸날 | 2005.09.23 |
쪽수 | 236p |
가격 | 9,000원 |
역설적인 문명비판으로 소설의 가치 이상을 획득한 소설
수백만 년에 걸친 초기 인류의 진화과정을 아버지와 아들로 이어지는 단 두 세대의 모험 속에 압축시킨 역설적인 이 소설은, 지난 50년 동안 인류역사의 진보 논쟁에 중심자리를 차지하는 독특한 위상을 갖는다.
갓 동물티를 벗은 순진한 인류에게 처음 있었을 법한 모든 일들이 펼쳐지는데, 진보와 보수의 대립과 갈등을 은유하는 사건들이 큭큭 웃음을 불러일으키다가도 가슴이 콱 저려오게 만드는, 실은 바로 지금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100만 년이나 200만 년 전, 혹은 하루나 이틀 전
나무에서 갓 내려와 땅 위를 두 발로 걷기 시작한 인간 혹은 원숭이
그가, 당신일지도 모르는 자기 아들을 향해 소리 높여 외치나니 -
“나는 왜 아버지를 잡아먹었나”
“진화에도 자유를 달라!…?…!”
주인공은 나무에서 갓 내려와 땅 위를 두 발로 걷기 시작한 원숭이 혹은 원시인들. 그러나 그들의 고민은 현대인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 하루의 3분의 1은 먹이를 잡는 데, 3분의 1은 그것을 먹어치우는 데, 나머지 3분의 1은 잠을 자는 데, 이렇게 인생의 모든 시간을 다 써야 한다면, 뭔가 보람 있는 일을 할 시간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인류의 진화를 앞당기기 위해 오늘은 무슨 새로운 짓을 해야 하는 거지? 그건 그렇고, 도대체 우리가 이렇게 빨리 진화해도 되기는 하는 거야?
200만 년 전부터 5만 년 전까지 이르는 기나긴 세월이 한 위대한 원시인 일가족의 삶 속에 축약되어 있는 이 소설은 구석기시대를 총체적으로 묘사한 한 편의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이 단순히 지질학적 또는 고고학적 정보나 지식만을 담고 있다면 굳이 이 소설을 읽을 필요가 있을까. 이 책이 주는 감동과 즐거움은 그런 데에 있지 않다.
진정한 인간으로의 진화를 앞당기기 위해 애쓰는 아버지 에드워드와 미개한 채로나마 자연에 순응하면서 살기를 고집하는 바냐 아저씨 사이의 논쟁은,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세계관의 갈등, 즉 진보와 보수를 둘러싼 투쟁의 원천이다. 아들 다섯 형제가 벌이는 모험과 창조의 노력은 또 어떤가. 무력을 신봉하는 오즈월드, 내세를 믿는 철학자 어니스트, 기술적 진보를 추구하는 윌버, 예술적 재능을 타고난 알렉산더, 동물을 길들이려고 애쓰는 윌리엄…. 이들의 성격과 태도와 사고방식은 곧 오늘을 살고 있는 인류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뿐인가. 남녀간의 사랑을 처음 발견하는 장면은 경이롭다 못해 아름답고 엄숙한 감동마저 자아낸다. 그림자와 꿈에 대한 해석은 현실 너머의 세계에 대한 인식으로 넓어지면서 진화의 차원을 더욱 드높인다. 그리고 이 소설은 부계 사회를 향한 권력 승계의 시대를 열면서, 마침내 홍적세의 종말에 이른다. 그 상징이 바로 이 책의 제목에 함축되어 있다.
이야기 자체는 다소 황당한 느낌이 없지 않지만, 묘사된 정황들은 고생인류학이 발견한 자료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사실적이고, 인류의 진화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교훈마저 담겨 있다. 우리들 자신은 지금 여기에 이토록 편안하게 앉아 있지만, 우리의 조상 원시인들은 얼마나 힘겨운 고난과 눈물겨운 노력을 거치면서 그들의 발명과 기억과 유산을 우리한테 물려준 것일까. 우리는 그들에게 감사와 격려의 박수를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주요 등장 인간 혹은 원숭이>
에드워드 : 진화를 하루라도 앞당기기 위해 애쓰는 아버지. 들고 다닐 수 있는 작은 화산, 즉 야생 불을 발견한 최초의 과학자. 늘 자신이 옳은 길을 가고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바냐 : 에드워드의 형. 진보란 자연에 대한 반역일 뿐, 나무에서 내려온 일이 인간이 한 짓 중 가장 멍청한 짓이라며 원숭이로 계속 남겠다고 고집한다.
오즈월드 : 에드워드의 큰아들. 짐승과 물고기를 잡는 사냥꾼으로서 놀라운 재능을 보여주며 무력을 신봉한다.
어니스트 : 에드워드의 둘째 아들. 이 글의 1인칭 화자로 내세를 믿는 철학자. 생각을 할 수 있다고 자부한다.
윌버 : 에드워드의 셋째 혹은 넷째 아들. 돌을 깎고 다듬는 재능이 뛰어나며 기술적 진보를 추구한다.
알렉산더 : 에드워드의 셋째 혹은 넷째 아들. 예술적 재능이 뛰어난 ‘꼬마 동물학자’로 원시재현예술을 펼쳐 보인다.
그리젤다 : 인류 최초로 족외혼을 성사시킨 에드워드 일가의 며느리. 어니스트의 짝으로, 타조처럼 빨리 달리며 악어보다 빨리 헤엄친다.
실로 유쾌한 소설이다. 아니, 사랑스러운 소설이다. 그저 재미있다거나, 감동적이라거나, 의미심장하다거나 하는 투의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참으로 즐겁고 반가운 소설. 오랫동안 잊고 지낸 어릴 적 친구가 어느 날 문득 보내온 편지 같다고나 할까. 지겹고 힘들고 시들해진 일상에 지친 나머지 어디 여행이라도 떠나고 싶은 마음일 때, 고향의 겨울바다에 오지 않겠느냐는 유혹이야말로 그 얼마나 즐겁고 신나는 초대인가. 이 소설은 그렇게 우리를 인류의 어린 시절로 초대한다. - 옮긴이 김석희
이것은 ‘컬트 서적’이라고 말해도 괜찮을 것이다. ‘컬트 서적’이라는 용어는 단지 사람들이 대규모 광고 때문이 아니라 행복한 우연으로 이 책을 발견한 뒤, 이 책을 아는 것은 오직 자신뿐이라는 따뜻한 느낌을 품게 되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이 책은 ‘좋은’ 컬트 서적이다. 여러분이 이 책을 다 읽었을 때쯤이면 이 책을 열렬히 찬미하는 지지자가 한 사람 더 늘어날 것이다. - 테리 프래쳇(영국의 판타지 작가)
차례
제1장 ~ 21장까지 (세부 제목 없음)
지은이 로이 루이스 Roy Lewis
1913년에 태어나, 『더 타임스』와 『이코노미스트』지에서 오랫동안 기자 생활을 했으며, 영국에서 살고 있다.
옮긴이 김석희
서울대학교 인문대 불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 국문학과를 중퇴했으며, 198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어 작가로 데뷔했다. 영어·프랑스어·일본어를 넘나들면서, 데즈먼드 모리스의 『털없는 원숭이』 『인간 동물원』, 존 파울즈의 『프랑스 중위의 여자』 『만티사』, 제임스 헤리엇의 『아름다운 이야기』『행복을 전하는 개 이야기』, 폴 오스터의 『빵 굽는 타자기』 『빨간 공책』, 쥘 베른의 『지구 속 여행』 『해저 2만리』 『80일간의 세계일주』,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르네상스의 여인들』, 홋타 요시에의 『몽테뉴(평전)』 『고야』 등 1백여 권을 번역했고, 역자 후기 모음집 『에필로그 60』을 펴냈으며, 제1회 한국번역상 대상을 수상했다
100만 년이나 200만 년 전, 혹은 하루나 이틀 전
나무에서 갓 내려와 땅 위를 두 발로 걷기 시작한 인간 혹은 원숭이
그가, 당신일지도 모르는 자기 아들을 향해 소리 높여 외치나니 -
“나는 왜 아버지를 잡아먹었나”
“진화에도 자유를 달라!…?…!”
주인공은 나무에서 갓 내려와 땅 위를 두 발로 걷기 시작한 원숭이 혹은 원시인들. 그러나 그들의 고민은 현대인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 하루의 3분의 1은 먹이를 잡는 데, 3분의 1은 그것을 먹어치우는 데, 나머지 3분의 1은 잠을 자는 데, 이렇게 인생의 모든 시간을 다 써야 한다면, 뭔가 보람 있는 일을 할 시간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인류의 진화를 앞당기기 위해 오늘은 무슨 새로운 짓을 해야 하는 거지? 그건 그렇고, 도대체 우리가 이렇게 빨리 진화해도 되기는 하는 거야?
200만 년 전부터 5만 년 전까지 이르는 기나긴 세월이 한 위대한 원시인 일가족의 삶 속에 축약되어 있는 이 소설은 구석기시대를 총체적으로 묘사한 한 편의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이 단순히 지질학적 또는 고고학적 정보나 지식만을 담고 있다면 굳이 이 소설을 읽을 필요가 있을까. 이 책이 주는 감동과 즐거움은 그런 데에 있지 않다.
진정한 인간으로의 진화를 앞당기기 위해 애쓰는 아버지 에드워드와 미개한 채로나마 자연에 순응하면서 살기를 고집하는 바냐 아저씨 사이의 논쟁은,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세계관의 갈등, 즉 진보와 보수를 둘러싼 투쟁의 원천이다. 아들 다섯 형제가 벌이는 모험과 창조의 노력은 또 어떤가. 무력을 신봉하는 오즈월드, 내세를 믿는 철학자 어니스트, 기술적 진보를 추구하는 윌버, 예술적 재능을 타고난 알렉산더, 동물을 길들이려고 애쓰는 윌리엄…. 이들의 성격과 태도와 사고방식은 곧 오늘을 살고 있는 인류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뿐인가. 남녀간의 사랑을 처음 발견하는 장면은 경이롭다 못해 아름답고 엄숙한 감동마저 자아낸다. 그림자와 꿈에 대한 해석은 현실 너머의 세계에 대한 인식으로 넓어지면서 진화의 차원을 더욱 드높인다. 그리고 이 소설은 부계 사회를 향한 권력 승계의 시대를 열면서, 마침내 홍적세의 종말에 이른다. 그 상징이 바로 이 책의 제목에 함축되어 있다.
이야기 자체는 다소 황당한 느낌이 없지 않지만, 묘사된 정황들은 고생인류학이 발견한 자료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사실적이고, 인류의 진화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교훈마저 담겨 있다. 우리들 자신은 지금 여기에 이토록 편안하게 앉아 있지만, 우리의 조상 원시인들은 얼마나 힘겨운 고난과 눈물겨운 노력을 거치면서 그들의 발명과 기억과 유산을 우리한테 물려준 것일까. 우리는 그들에게 감사와 격려의 박수를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주요 등장 인간 혹은 원숭이>
에드워드 : 진화를 하루라도 앞당기기 위해 애쓰는 아버지. 들고 다닐 수 있는 작은 화산, 즉 야생 불을 발견한 최초의 과학자. 늘 자신이 옳은 길을 가고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바냐 : 에드워드의 형. 진보란 자연에 대한 반역일 뿐, 나무에서 내려온 일이 인간이 한 짓 중 가장 멍청한 짓이라며 원숭이로 계속 남겠다고 고집한다.
오즈월드 : 에드워드의 큰아들. 짐승과 물고기를 잡는 사냥꾼으로서 놀라운 재능을 보여주며 무력을 신봉한다.
어니스트 : 에드워드의 둘째 아들. 이 글의 1인칭 화자로 내세를 믿는 철학자. 생각을 할 수 있다고 자부한다.
윌버 : 에드워드의 셋째 혹은 넷째 아들. 돌을 깎고 다듬는 재능이 뛰어나며 기술적 진보를 추구한다.
알렉산더 : 에드워드의 셋째 혹은 넷째 아들. 예술적 재능이 뛰어난 ‘꼬마 동물학자’로 원시재현예술을 펼쳐 보인다.
그리젤다 : 인류 최초로 족외혼을 성사시킨 에드워드 일가의 며느리. 어니스트의 짝으로, 타조처럼 빨리 달리며 악어보다 빨리 헤엄친다.
실로 유쾌한 소설이다. 아니, 사랑스러운 소설이다. 그저 재미있다거나, 감동적이라거나, 의미심장하다거나 하는 투의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참으로 즐겁고 반가운 소설. 오랫동안 잊고 지낸 어릴 적 친구가 어느 날 문득 보내온 편지 같다고나 할까. 지겹고 힘들고 시들해진 일상에 지친 나머지 어디 여행이라도 떠나고 싶은 마음일 때, 고향의 겨울바다에 오지 않겠느냐는 유혹이야말로 그 얼마나 즐겁고 신나는 초대인가. 이 소설은 그렇게 우리를 인류의 어린 시절로 초대한다. - 옮긴이 김석희
이것은 ‘컬트 서적’이라고 말해도 괜찮을 것이다. ‘컬트 서적’이라는 용어는 단지 사람들이 대규모 광고 때문이 아니라 행복한 우연으로 이 책을 발견한 뒤, 이 책을 아는 것은 오직 자신뿐이라는 따뜻한 느낌을 품게 되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이 책은 ‘좋은’ 컬트 서적이다. 여러분이 이 책을 다 읽었을 때쯤이면 이 책을 열렬히 찬미하는 지지자가 한 사람 더 늘어날 것이다. - 테리 프래쳇(영국의 판타지 작가)
차례
제1장 ~ 21장까지 (세부 제목 없음)
지은이 로이 루이스 Roy Lewis
1913년에 태어나, 『더 타임스』와 『이코노미스트』지에서 오랫동안 기자 생활을 했으며, 영국에서 살고 있다.
옮긴이 김석희
서울대학교 인문대 불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 국문학과를 중퇴했으며, 198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어 작가로 데뷔했다. 영어·프랑스어·일본어를 넘나들면서, 데즈먼드 모리스의 『털없는 원숭이』 『인간 동물원』, 존 파울즈의 『프랑스 중위의 여자』 『만티사』, 제임스 헤리엇의 『아름다운 이야기』『행복을 전하는 개 이야기』, 폴 오스터의 『빵 굽는 타자기』 『빨간 공책』, 쥘 베른의 『지구 속 여행』 『해저 2만리』 『80일간의 세계일주』,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르네상스의 여인들』, 홋타 요시에의 『몽테뉴(평전)』 『고야』 등 1백여 권을 번역했고, 역자 후기 모음집 『에필로그 60』을 펴냈으며, 제1회 한국번역상 대상을 수상했다